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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선] '고인돌 그 경이로운 공동체'.. 들어가는 글 '건방'

기사승인 2020.12.21  07: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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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가 내게 그런다. “글에 너무 건방이 들어가 있어요.“

나는 내가 건방짐을 안다. 그건 나의 특성이고 천성이며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이며 그렇게 해야만 함을 깊숙이 받아 들여야만 한다는 숙명이기도 하다.

건방(乾方)이란 무엇일까? 건방이란 정서(正西)방향과 정북(正北) 방향을 중심으로 45 각도의 내의 방향이다. 고창읍에서 아산면 중복의 우리 집은 거의 정서 방향이니 건방지지는 않다.

하지만 읍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고수면 소재지에서 바라보면 우리 집은 건방이다. 건방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또 하나의 건방이 있다. 방(防)은 막다, 대비하다인데 ‘죽’은 축(滀)이 순화 된 것 같다. 건방은 건방죽의 줄임말이다.

가뭄에 대비해 물을 모아놓은 저수지가 물이 말라 버린 것이니 아무 쓸짝이 없다는 것으로 쓸모없이 허세만 떠는 사람을 이르는 것이겠다.

결국 합치면 머릿속에 든 것도 없고 주머니는 비어있는 주제에 천방지축(天方地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속이 뜨끔하다. 마치 나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진짜 건방진 사람 하나를 알고 있다. 부유한 집안의 의사였던 아버지가 의사를 시키려고 의대에 보냈지만 몇 년 후에 포기하고, 그 시대에는 권력이던 신부를 시키려고 신학대에 입학 시켰지만 자신과는 맞지 않다면 생물체에 만 관심을 보이는, 집안의 골칫거리였던 젊은이였다.

그 후 집안의 배경으로 대영제국의 탐사선 비글호를 타고 선장의 기쁨조로 5년간 세계 일주를 하면서 기행문을 쓰고 후에 책을 한권 써서 인류의 역사를 바꿔버린 위대한 사내가 있었다.

그 이름은 “찰스 다윈이다” 다윈은 영국에서 1825년 태어나 1900년 죽었다.

그는 1500년 간 서구사회를 완벽히 지배하던 절대 왕국 헤브라이즘 유일신의 창조론을 뒤집고 진화론을 발제하는 무시무시하게 건방진 사내였다.

또 한명의 건방진 사내가 있었다. 최만리라는 신하로부터 사대모화(事大慕華), 이적(夷狄)같은 끔찍한 글이 담긴 상소문을 받고도 오직 백성과 국가를 위해 불굴의 의지로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이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국보와 보물을 합친 것보다 “한글‘이야말로 더 우뚝한 민족의 문화라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 옹기종기 살았을 뿐 언어도 통일 되지 않은 각 각의 나라였다.

한글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한민족이라는 의미도 없으며 경제기적을 일군 현재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다.

세종대왕님과 찰스 다윈은 왜 건방의 글에 초대되었는가? 두 분은 건방 하셨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위치 즉 건방을 달리 하셨기 때문이다.

한자에서 백성으로, 창조론에서 진화론으로, 고정관념이라는 자리에서 혁신이라는 자리로 바라보는 위치를 옮김으로서 인류와 지구촌의 위대한 스승이 되신 것이다.

또 하나의 건방이 있었다. 마른 방죽이다. 마른 방죽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것은 일반인의 게으른 생각이다. 혁신가는 그 마른방죽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세종은 한글을 비롯해 백성을 위한 다양한 국가 법제와 선진적 물건을 만들어 내셨으며, 빌 게이츠는 개인 컴퓨터를, 스티브 잡스는 아이 폰을 만들어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이 건방에 대한 지성인의 쓸모이다.

나도 건방지고 싶다. ‘신 채호‘님과 ‘김 구‘님처럼 민족적 자존감을 닮고 싶다.

나는 25년여를 “고인돌”과 “태극& 태극기& 코스모스”에 천착하고 있다.

한반도의 지식은 오래전에는 대륙의 학문에 수직종속적 이였고, 근현대에는 서구의 학문이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한반도의 문명과 문화는 굴절되고 비하되어 종속되는 체계였고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종속과 비하는 건방으로 변질 되어서 외래지식의 습득자나 권세가의 횡포, 기성세대의 체면유지나, 심지어 말단 면사무소의 농민 무시에 까지 사용되었다.

건방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더욱 힘을 얻어서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언어의 채찍이 되고 심지어 그 의미도 모른 체 초등학생까지도 속박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과연 이 아이들은 누구에게 건방을 배웠겠는가? 식민사관의 건방은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혁신과 창의성을 빼앗아 가고 있다.

내가 천착하는 태극기나 고인돌이 그러하다. 아주 불행하게도 그렇다는 사실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태극기는 태극에서 나왔고, 태극은 주역에서 나왔다.

대륙의 사상에서 이미 완성 된 것이다. 고인돌은 우리 선조의 위대함이 숨겨져 있는 ‘타임캡슐’이지만 식민사관에 굴절 된 체 그 의미는 비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극은 중국에서 5,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고인돌은 식민사관의 굴레에 갇혀있다. 태극기는 대륙의 거대한 사상을 넘어서야하고, 고인돌은 찌들은 일본의 식민사관을 넘어서야한다.

대범하고 올바른 건방이 없다면 우리는 지구촌 변방의 지식종속국으로 살아야한다. 2020.11.29.밤 20시

나는 오직 한반도를 바라보는 고인돌과 태극기에 대한 건방을 할 것이다.

그 길이 내 철학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 아버지가 가신 집의 밑으로 내가 갈 때까지 숙명을 천착할 것이다.

박홍기 31919191@naver.com

<저작권자 © 데일리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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